이경해 열사 추모 4주기를 맞아 영국 유력주간지인 디 옵저버(The Observer)가 7월29일자로 열사의 활동상을 담은 특집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쓴 ‘닉 머싸이어슨(Nick Mathiason)’ 기자는 7월 하순 한국을 방문, 이경해 열사 막내 딸 이지혜 씨를 비롯 열사의 지인들을 취재하고 돌아갔다.

디 옵저버에 실린 기사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Daughter waits for the real harvest from her father’s suicide
<딸은 아버지의 희생이 진정한 결실을 맺기를 기다리고 있다>

막내딸 지혜 양 “아버지, 농업부문은 무역협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평생 강조”

사랑했던 아버지의 자살배경에 대한 질문에 이지혜양은 답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말을 건네자 올해 26세인 이지혜양은 처음엔 차분한 마음으로 답변을 하려 했으나 이윽고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런 슬픔 건너편엔 자부심도 엿볼 수 있었다.

이지혜양의 아버지인 이경해 열사는 4년 전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고 이 열사를 수백만 사람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열사는 다자간 협상이 열리던 회의장 건물 밖 수천만 시위대 가운데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회의장엔 각국 정치가들과 협상대표들이 개도국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무역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모여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상품에 대한 무역자유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같은 협상은 농업수출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와 같은 국가들에겐 매력적일지 모르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는 한국의 농민들에게 이는 재앙과도 같다.

따라서 일부 부유한 나라의 값싼 농식품이 몰려오는 가운데 극빈상태 직면했던 이 열사의 자결은 소농들의 위기를 알리기 위한 처절한 행위였다.

이 열사는 대학졸업 후 부인을 만나 농촌지역에서 신혼의 단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1987부터 시장개방 압력을 받기 시작했고 이 열사 삶의 역경은 시작됐다. 시장개방 압력은 이경해 씨가 단순한 농업인으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했으나 또 다른 삶을 위한 전환점을 제시해 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 열사와 동료들은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한농연의 전신)를 설립, 오직 경제 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던 정치인들에게 농민권익 보호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 열사는 한농연의 제2대 회장으로서 단식투쟁을 불사하지 않는 등 농민권익 운동에 투혼을 불살랐다.

정치인들은 이 열사가 죽기 전 그의 호소를 외면했으나 그의 죽음 이후 자국이 독립적으로 식량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식량안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식량안보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항해 왔고 잠재적으로 향후 지정학적 변동에 취약한 한국으로선 더욱 민감한 문제였다. 이 열사는 “자국 스스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국가문제의 최우선 과제”라고 항상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첨단 기술화된 소비 지향적 한국사회와는 양립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 농업은 기로에 서있다. 최근 몇 년간 농산물의 판매는 증가한 반면 가격은 하락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동안 농민들은 정부정책에 따른 시설 현대화를 위해 많은 대출을 받아야 했으며 이로 인해 큰 채무를 짊어지게 됐다.

또 한국은 새로운 무역자유화 물결에 처해있다. 올해 6월말 미국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고 유럽연합(EU)과는 FTA 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와 관련 이 양은 “아버지는 식량에 관한 문제는 무역협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농업부문은 무역협상에서 제외가 돼야 한다고 한평생 강조하셨다”며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물결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나 식량산업이 모든 산업의 토대가 되는 1차 산업으로서 가장 중요하다는 우리 삶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경해열사가 만일 사랑하는 막내딸 이지혜 양의 이 같은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한국농어민신문 8월 6일자 2면 기사 전문 인용, 번역 한국농어민신문 국제부 전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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