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농성에 들어가며


우리 농업은 이 나라 국민의 건강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또한 농업은 예로부터 이땅의 생명력을 지켜온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농업은 개발의 논리와 시장경제 논리에 밀려 항상 양보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작금의 농업현실을 살펴보면 30%에도 못미치는 식량자급도로 국가의 식량안보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고, 농업생산성마저 은행이자는커녕 연간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쳐 농민들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빛만 늘어나는 악순화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지난 UR이후의 수입농산물의 범람은 이땅의 농민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지금 세계는 WTO를 중심으로한 식량수출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강도높은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국내의 극단적 자유무역주의 추종자들이 동조하면서 우리의 농업은 계속해서 그 영역을 외국에 빼앗기고 있다.

이러한 농업의 현실앞에 영농의욕을 상실한 농민은 정든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고 있으며, 농촌에 남아 농업을 지키던 농민들마저 늘어가는 농가부채를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 자살 등의 현실도피적 극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상호신용보증으로 인한 연체자 양산으로 농촌의 경제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우리 농민단체장 일동은 이 나라의 농업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의 식량안보, 민족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해 이렇게 구국의 심정으로 단식농성에 돌입함을 천명한다. 우리는 외국의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으로부터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지켜내어 멀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식량무기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그 첫걸음이 국가의 개방농정과 정책실패로 인한 농촌의 어려움을 농가부채특별법의 제정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 우리 농민단체장들은 ‘농민만이 잘살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아닌 국가의 수출지상주의 개방농정으로 인해 희생당해온 농민을 어루만져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식량위기에 대응하고, 국가의 자주권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써 단식농성을 시작함을 다시한번 밝혀둔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당국은 농민들의 이러한 절박한 외침에 귀기울여 다가올 국가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해야할 것이다.

2000. 11. 17.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농민단체협의회 단체장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