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까지 끝내야 하는 쌀시장 개방 재협상이 미국과의 합의 실패로 연내 타결이 불투명해지는 등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5일 “당초 12월 초까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미국과의 협상 실패로 쌀 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중국 측이 최종 협상 일정을 잡는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협상 실패가 쌀 협상 대상 9개국을 자극, 협상 전체의 단일안마저 도출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쌀협상 타결 왜 실패했나

미국 측은 이번 협상에서 의무수입물량 배분에서 자국산 쌀을 한국측이 수입하는 물량 가운데 30%까지 배분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측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미국 측은 또 내년부터 10년차에 의무수입 쌀의 국내 시판 비율을 75%까지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수입 쌀의 국내 시판을 허용해 10년차에는 30%까지 허용하겠다는 주장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또 의무수입물량을 8%까지 늘려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협상 어떻게 되나

미국과의 협상 실패로 정부가 그동안 벌여온 쌀 수출국 9개국과의 단일안 도출이 어려워지는 등 쌀협상 전체의 타결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쌀협상 종료시한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자국의 이득을 위해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한국을 압박해 협상이 갈수록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일 열린 7차 쌀협상에서 다소 유연한 모습으로 전환, 한·미협상 결과를 지켜본 뒤에 최종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이번 협상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중국측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조만간 열릴 예정인 한·중 협상에서도 합의 도출을 낙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관세화 전환과 관세화 유예의 장단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쌀 산업이 경쟁력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쌀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국내 농가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12월 초까지 관세화 전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던 정부의 협상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농민단체 입장

한국과 미국의 쌀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협상력 부족으로 이같은 결과가 초래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앞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농민들의 손실을 최소화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한농연은 우선 쌀 협상이 올 연말까지 타결되지 않더라도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당장 내년부터 관세가 부과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 정부가 시간에 쫓겨 미국의 요구대로 쌀 의무수입물량을 높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농연은 또 이번 한·미 쌀 협상 실패로 이달 말까지 최종안을 마련, 다음달 초 관계기관과 농민들의 공청회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지만 시간에 쫓겨 농민들에게 불리한 협상을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농연은 특히 중국과 미국의 쌀시장 개방 압력 속에서 우리 정부는 그동안 쌀 관세화 유예협상 대응전략이 미비해 7000만 민족의 식량주권과 350만 농민들의 기초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와 쌀 추가개방 반대, 수입 식용쌀의 일반시장 판매를 반드시 막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농연은 이와 함께 정부가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발표한 소득보전 직불제가 물가와 생산비 상승요인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의 한 관계자는 “이제 정부가 그동안 전농에서 주장해 온 쌀개방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밀실 굴욕협상으로 일관했었다”면서 “쌀은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식량파동에 따른 식량안보를 지켜내는 가장 중요한 주식이므로 반드시 쌀 개방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민들은 정부의 쌀 협상 결과에 따라 농가의 생존여부가 달렸다는 입장이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력을 발휘해 줄 것을 주문했다.

-세계일보 기사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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