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사과·배·인삼·양파 등의 원예작물은 쌀과 쇠고기, 감귤 등의 민감 품목에 가려져 상대적 관심이 낮았다. 하지만 결과는 연차적 관세인하와 의무수입량(쿼터) 배정에 따라 갈수록 피해가 클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완전 관세철폐 장기화와 품목별 계절관세 적용 및 세이프가드(ASG) 등을 무기로 내세우지만 저장기술 발달과 세이프가드 기준 물량이 높아 방어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식용감자와 사과 포도 양파 인삼 등의 품목별 피해와 대책을 알아본다.

‘식용’ 관세 단계적 철폐 대신
TRQ 물량 늘려 피해 불가피

◇식량작물

식용대두가 현행관세(487%)를 유지하지만 무관세 쿼터2만5000톤을 부여해 매년 3%씩 늘린다. 착유 및 대두박용과 장유박용은 관세 즉시 철폐다. 보리의 경우 15년 후 철폐에 ASG(세이프가드)를 적용하고 겉보리(324%)와 쌀보리(299.7%) 무관세쿼터 2500톤∼3299톤이다. 맥아(269%)와 맥주보리(513%)는 무관세쿼터 9000∼1만1875톤까지다.

옥수수는 7년 후 철폐하는데 옥수수 기타(328%)가 무관세쿼터 9만3774톤∼41만2603톤이고, 옥수수 팝콘(630%)은 무관세쿼터 2556톤∼1만82678톤이다. 팥 (420.8%)과 녹두(607.5%), 고구마(385%), 메밀(256.1%) 등은 15년 내 철폐에 무관세쿼터 각각 1000톤 미만이 제공된다.

콩의 경우 농촌경제연구원 분석결과 관세 10년 단계 철폐시 피해액 1090억원에 이를 만큼 심각하다. 현행관세를 유지하지만 무관세 할당이 증가하면 농가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감자도 칩용의 경우 국내 가공업체의 수입 대체로 농가 계약재배 파장이 우려된다. 보리는 재고 증가에 무관세쿼터까지 제공해 재배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무관세 쿼터 해마다 3% 늘면
연 500억 이상 소득감소 우려

◇감 자

농산물 양허안 협상결과 감자의 경우 식용은 현행 관세인 304% 유지하되 가공용은 관세를 철폐한다. 문제는 무관세 식용 감자 수입쿼터를 3000톤으로 정하고 매년 3%씩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국내 연간 감자 생산량이 약 60만 톤과 비교해 수입쿼터물량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매년 감자 소비량이 감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입권 공매방식이라도 무관세로 국내에 반입될 경우 국내 감자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현재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따라 저율관세 30%로 수입되는 의무물량의 국내 판매가격은 2만2000원 수준인데 무관세로 수입될 경우 1만5000원 선으로 내려간다. 국내산 대지마 및 수미품종 2006년 연평균 가격이 1만7000∼1만9000원대로 국내산 감자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생산자조직에서는 무관세 수입쿼터 물량이 책정되면서 감자농가의 최대 30%까지 이농 현상을 유도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부기관은 한미FTA 체결 결과 관세가 완전 철폐되더라도 농가 소득감소 예상액을 250억 원으로 분석했으나 생산자조직은 현 협상결과만으로 500억 이상의 소득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오렌지, 3월 이후 저장사과에 ‘치명타’

◇사 과

한미FTA 체결 과정에서 사과의 경우 후지 품종은 20년 간 관세철폐(23년 세이프가드), 기타 품종은 10년 간 관세철폐(10년 세이프가드)하는 것으로 결정돼 표면적으로는 영향이 적다. 또 미국에서 국내로 들여올 품종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선 오렌지가 3월부터 30%의 계절관세로 수입될 예정으로 저장 사과 소비에 직접적인 파격을 줄 수 있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또한 미국의 메이저 브랜드 회사에서 현재 사과 수입관세가 45% 불과해 미국산 사과를 저가 마케팅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신선과일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과 주스 등 가공품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국내 생산량 중 30% 수준인 12만 톤 정도가 사과 주스 등 가공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원료구매 가격은 4000원(15kg 기준) 내외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원료구매 1800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관세 철폐로 미국산 사과 주스가 수입되면 주스용 사과는 수요처를 잃어 시장으로 출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정부기관에서는 관세를 10년 단계적 철폐 시 사과 생산감소 규모가 605억원으로 추산했으나 산지에서는 1000억 원대는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과수연합회 윤익로 회장은 “오렌지의 계절관세 적용은 국내 과일소비 형태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온 것으로 농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판”이라고 강조했다.

늦은 출하 ‘만생종’·포도주 타격 예고

◇포 도

이번 한미 FTA 체결에 있어 포도는 계절관세 품목으로 적용, 향후 수확기와 비수확기로 나뉘어 노지포도 성출하기인 5∼10월 15일까지 수입되는 미산 포도의 경우 17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며 10월 16일부터 4월까지 비수확기 동안에는 24%의 관세로 시작해 5년 안으로 관세 철폐가 진행된다.

특히 포도주의 경우 협정 발효와 동시에 관세가 철폐, 미산 포도주 가격이 현행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국내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포도연구회(회장 박택균)는 지난 4일 성명서 발표를 통해 당초 정부는 지난 7차 협상까지 비수기에만 계절관세를 실시하겠다고 제시했음에도 불구, 결국 최종 협상에서 10월 16일부터 4월까지 5년간 단기 철폐로 결론지었으며 더구나 현행 45%의 관세가 아닌 24%에서 시작함으로서 미국의 포도 수입의 문을 대폭 열어주게 됐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농협 품목별협의회 소속 한국포도생산자협의회 김문규 회장 역시 “아무리 국내 포도 성출하기에 수입되는 포도에 대해 계절관세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10월 이후까지 출하되는 만생종 포도는 결과적으로 수입포도와 경쟁이 불가피하게 될 판”이라며 “특히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되는 포도주로 영동지역의 ‘샤또마니’ 등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장한 국내 포도주 시장에 직격탄을 입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호소했다.

타품목농가 진입 급증…출혈경쟁 우려

◇양 파

양파는 FTA 발효 후 18년 동안 일정물량 이상 수입이 급증할 경우 자동으로 관세를 올리는 농산물 세이프가드에 적용을 받게 되며, 15년 이상의 장기 관세 철폐가 확정됐다. 지금까지는 중국산 신선 양파의 수입량에 더욱 큰 영향을 받고 있지만 미국산이 반입될 경우 국내 마늘 유통시장의 판도는 또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변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중국산 양파와는 달리 미산 양파는 이번 한미 FTA 여파로 경쟁력이 약화된 타 품목 생산농가들의 작목 전환에 따른 내수 생산량 증가가 더욱 염려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산 김치 수입 급증으로 국내 양념채소 시장의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어 자칫 내수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번질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다른 품목보다 가공 산업 기반도 약해 국내 내수 생산량이 급증할 경우 그대로 양파 값의 폭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한국양파생산자협의회 김영주 회장은 “최근에도 중국산 양파의 수입 급증과 국내 생산량 확대로 양파 값이 수개월동안 약세에 허덕였는데 이제는 설상가상 미국산과도 경쟁해야 한다”며 “미국 양파가 국내 양파와 직접 가격경쟁을 하진 않더라도 제주지역의 감귤이나 다른 밭작물 생산농가들이 양파로 품목 전환을 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양파는 과잉생산에 따른 국내 농가들과의 출혈경쟁이 야기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IP : 211.17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