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우리로선 가장 민감한 농산물인 쌀을 개방 예외 품목으로 인정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허울뿐인 쌀시장 개방 예외를 대가로 농산물 혹은 다른 분야에서 어떤 양보를 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3월 4일 통상교섭본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통상장관 회담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3월 5일부터 6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농업분야 고위급 회담과 쇠고기 수입검역 관련 협의에서 이를 토대로 협상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미 통상장관 회담에 참석했던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측의 쌀 시장 장벽 완화나 미국측의 존스 액트(John's Actㆍ미국 연안의 승객 및 화물수송은 미국 국적 선박으로 제한하는 법률) 수정 등에 대한 상대국의 요구는 FTA 협상을 깰 수 있는 '딜 브레이커(Deal Breakerㆍ협상결렬 요인)'로 상호 인정했다"며 "양국은 이들 사안에 대해 서로 양해키로 하고 8~12일 열리는 8차 협상에서 남은 쟁점들에 대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쌀 시장 개방 예외 대신, "광우병 쇠고기"의 관세철폐와 수입개방이라고?

미국측은 협상에서 한국측에 쌀 시장 개방 요구를 접는 대신, 그 대가로 농산물 분야에서 쇠고기 수입시장의 전면 개방과 함께 현행 40%의 고율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선 의회에서 한-미 FTA 비준을 받기 위해선 쇠고기 시장 개방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이와 관련, "한ㆍ칠레 FTA 협상에서 개방예외 품목으로 합의된 것은 쌀과 쇠고기, 오렌지 뿐"이라며 "민감 품목인 쇠고기의 수입 관세 문제는 앞으로 고위급 회담에서 매듭을 지어야 할 핵심쟁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농업분야 고위급 회담 한국측 대표인 민동석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은 '뼛조각 쇠고기' 쟁점과 관련, "뼛조각이 발견된 박스만 반송 또는 폐기하는 방안을 미국측에 다시 제안할 것"이라며, "실무진의 협상이 결렬됐다고 해서 고위급 회담에서도 미국이 제안을 거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타결 전망을 낙관했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애초부터 한-미 FTA의 협상 대상이 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2004년 WTO 쌀 관세화 유예 협상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여타 WTO 회원국들과 협상 조건이 합의된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만을 낳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쌀 시장 개방 예외를 관철시켰다고 하면서, 미국측에 정작 초민감품목 축소 및 관세율 인하, 쿼터량 확대 등의 일방적인 양보를 할 경우, 자칫 대한민국 정부 수립 59년 이래 최악의 농업통상협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세계 최강 농산물 수출국 미국과의 농업협상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지켜내고 농민생존권을 확보했다는 말인가?

3월 5일 농업분야 고위급 협상에 대한 입장

3월 5일 오늘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FTA 농업분야 고위급 협상이, 6일에는 한-미간 2차 쇠고기 검역 실무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재개 및 쌀시장 개방 문제 등이 다뤄질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8차 협상을 앞둔 현 시점에서 350만 농민의 생존권은 물론 국민 건강권의 심각한 침해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 7차 협상 직후, 정부는 농업 부문 민감품목 축소(235개→100여개)와 쌀에 관련된 일부 품목(HS 10단위 총 18개 품목 중 8개)의 수입 허용 검토는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350만 농민과 국민들은 이같은 정부의 해명을 신뢰할 수 없다. 양국 수석대표가 늦어도 4월초까지 FTA 협상 타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가운데, 정부가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문제를 내세우며 협상 타결 자체에만 몰두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주고, 마음주고, 사랑도 줬지만"...도대체 '국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단적으로 8차 협상을 앞둔 현 시점에서 자동차, 무역구제, 섬유, 약제비 적정화 방안,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등 그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당초 약속했던 협상 전략을 고수하지 못한 채, 미국 정부의 치밀한 전략 전술에 휘말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350만 농민의 의견을 끝까지 묵살하며 생존권을 말살하는 '대국민 폭거'를 계속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국가 식량주권과 국민들의 식품 안전권이 걸린 농업분야를 전체 FTA 협상 추진의 걸림돌로만 인식하는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대응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농업분야 민감 품목 처리 문제와 품목별 쿼터 조정 등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협상을 통해 지난 7차 협상 당시 논란거리였던 농업분야의 무차별 개방 확대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 기간산업인 농업과 식품 안전권이 허울뿐인 ‘국익 증진’을 위한 볼모로 내몰리는 서글픈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간 정부는 농민들의 요구와 우려를 각종 집회의 원천봉쇄와 각종 방송 광고의 ‘조건부 방송가’ 판정 등으로 억누르며, 미국 정부에는 일방적인 양보로 일관하고 있다. 한-미 FTA 체결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불분명하며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등으로 국민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국민 여론을 철저히 오도해 왔다.

특히 핵심 이해당사자인 농민들의 궤멸적 피해는 애써 외면하고 묵살하며, 농업분야 등 각종 고위급 회담과 양국 정상간 ‘빅딜’로 한-미 FTA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350만 농민의 생존권을 철저히 짓밟는 대국민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의 굿판 ‘한-미 FTA’를 지금이라도 당장에 거둬치워라!

첫 단추부터 잘못낀 한-미 FTA 협상은, 어떠한 국익도 제공하지 못하며 정당한 명분을 찾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350만 농민과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중단하라! 농업의 총체적 붕괴와 국민 건강권 문제가 걸린 한-미 FTA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근본적인 농업회생 대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

IP : 219.251.38..***